벤처기업의 글로벌 케즘(Chasm)

  70년대 우리 선배들은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우리 상품을 수출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 주요 교역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실 변변한 제품하나 없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잘 사는 조국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가정도 포기한 채 수출전사로 활약했던 우리 선배들을 존경한다. 해외에서 세일즈를 했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었던 또는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개발했던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었다.

  그 당시 수출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곳은 바로 종합상사이다. 해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 종합상사는 해외시장과의 교두보 역할을 해 주었고 그 덕에 수많은 상사맨들이 우리나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제 시대는 변하여 어지간한 기업은 직접 수출을 한다. 종합상사는 그 화려한 역할을 뒤로하고 무대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와는 다른 글로벌 전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과거에는 지금의 중국처럼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면 팔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가격이나 독자적인 브랜드파워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종합상사 브랜드로는 금융과 신뢰도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지식상품의 해외 수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식산업의 시대라 일컫는 21세기의 글로벌 전략은 과거와 어떻게 다를까. 한국시장에 팔고 나서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초기, 창업초기부터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제 우리 안방인 대한민국시장에서도 우리끼리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합상사가 가졌던 개념과는 다른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글로벌화(Globalization)라는 것은 첫째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시장 규모도 경쟁상대를 조사하는 것도 그리고 어떤 시장을 먼저 공략해야 할 지도 그런 관점으로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휴맥스가 디지털셋톱박스를 유럽시장부터 공략하여 전세계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한국에서의 매출이 전체의 10%도 채 안 된다.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 펼칠 수 있는 시장을 전 세계를 놓고 찾아야 한다. 우선 한국에서 해 보고 수출은 나중에 라는 식으로는 한국시장에서조차 성공하기 힘들다.

  두 번째는 글로벌케즘을 극복해야 한다. 글로벌케즘은 우리가 글로벌 파트너가 되기 위하여 넘어야 할 협곡이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이 협곡을 뛰어 넘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이를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협곡 저 편에 직접 가서 그들과 함께 사업을 구상하지 않으면 진정한 글로벌화는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 협곡을 건너뛰게 만들 것인가. 우선 문화적 이질감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 상품을 팔려고 노력했지 그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은 소홀했다. 해외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한국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언어에 문제가 아니라 획일화된 우리의 일상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자체를 피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주요 모임을 통해 사업이 이루어지듯 글로벌 모임에 자주 참석해서 그들과 함께 하는 것 그래서 그들과 인간적 교감을 하는 것이야말로 벤처기업들의 글로벌 전략에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한민족글로벌벤처네트워크인 INKE도 그런 의미에서 탄생하였고 벤처산업에 관심 있는 각 나라의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한 상품이나 기업 또한 글로벌케즘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 것을 파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글로벌 파트너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전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하며 주요시장을 위한 현지화를 사업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것을 내다 판다는 생각을 가지고 파트너에게 어떻게 팔든 나는 모르겠으니 돈만 많이 주라는 식의 태도로는 글로벌케즘을 극복하기 어렵다.

  현지화는 시장조사, 규격, 규제, A/S, 마케팅 등 시장 진입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무척 많다. 특히 벤처기업 제품은 초기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들이 많아 현지 파트너들도 충분한 사전교육과 조사가 필요하다. 이는 다시 말해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리스크를 누가 떠 안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이 글로벌케즘을 뛰어 넘지 못하는 벤처기업은 결코 글로벌화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초기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또 판매자, 개발자, 생산자 등이 함께 이 위험을 공유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벤처산업의 현안인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이 글로벌케즘을 효과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벤처기업가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글로벌 파트너가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세계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과의 네트워킹 부족으로 세계 시장에 빛을 못 보는 많은 벤처기업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