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화 일궈낸 한국계 디제라티
전세계 첨단 정보기술(IT)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
리에서 한국계 디제라티(디지털 지식계급)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1세대 벤처기업가 몇명의 성공이 아메리칸 IT드림의 실현으로 치
부됐던 90년대 초중반과는 달리 최근 잇따른 한인 기업가들의 성
공담은 실리콘밸리 닷컴과 새너제이 머큐리뉴스등 현지 언론들의
단골 메뉴가 됐다. 실제로 이들은 한인 특유의 성실함과 도전정
신으로 무장, 실리콘밸리에서도 인도 및 중국계와 함께 IT산업
주도할 신흥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인 디제라티의 대표주자는 단연 넷지오의 마이클 양(39)사장.
양사장은 지난 2월 소비자들이 가장 낮은 가격으로 상품이나 서
비스를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터넷 쇼핑몰 가격비교 검색
사이트 마이사이먼 닷컴을 뉴스 배급업체 시넷에 7억달러(약 800
0억원)에 매각하면서 일약 실리콘밸리의 신화로 떠올랐다. 최근
에는 인터넷 접속위치 파악 및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넷지오를
설립, 시어리얼 앙트러프러뇌르(serial entrepreneur:연속적인
성공 기업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검색엔진 개발업체 와이즈넛의 윤여걸(30)사장과 미국내에 900여
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인터넷 무료전화 서비스업체 다이얼패드
닷컴의 안현덕(35)사장도 차세대 한인 디제라티의 대표주자로 꼽
힌다. 이들은 특히 국내에서 대학교육을 마친 뒤 미국으로 진출
했다는 점에서 한국 벤처기업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세계적인 E메일 메시징 솔루션 및 관리 전문업체 메일 닷컴의 제
이 조(46)지역담당 부사장과 E메일 마케팅업체 디지털 임팩트의
윌리엄 박(33)사장, 온라인 컴퓨터 소프트웨어 임대업체 코리오
의 조너선 리(40)사장 등도 닷컴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장비 부문에서는 소비자 통신망장비 개발업체 INC 및 초고속 통
신망을 이용한 콘텐츠 서비스장비 개발업체 바이어게이트를 운영
중인 조요성(60)회장과 아날로그 영상신호의 디지털 변환기 개발
업체인 실리콘 이미지의 데이비드 리(44)사장 등이 돋보인다. 특
히 조회장은 AT&T 재직 당시 핵심기술개발의 주역으로 활약하는
등 통신장비 개발부문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도 다이아몬드 컴퓨터 시스템의 신화로 널리 알려진 이종
문(71)회장도 최근 투자업체 암벡스를 설립, 국제적인 벤처투자
가로 변신하면서 한민족 디제라티의 대부로서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2~3년간 이들의 성공이 이어짐에 따라 이제 한인 IT인력은
미국 내에서 인도중국계와 함께 무서운 세력으로 인식되기에 이
르렀다. 이는 무엇보다도 높은 교육열과 꼼꼼함, 성실성, 시련의
역사를 극복해낸 도전정신 등 한민족 특유의 기질에 힘입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넷지오의 마이클 양회장은 이에 대해 한민족의 창의적이고 도전
적인 기질이야 말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정신과 맞아떨
어진다며 인도나 중국계에 비해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조만
간 전세계 IT산업을 이끄는 수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
다.
뉴욕대 산업연구소 주디 김(32)연구원도 이민 2세대나 3세대는
미국식 사고방식에 익숙한 동시에 한국적인 정서 또한 갖고 있다
며 흔히 한민족의 장점으로 꼽히는 요소들을 이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농경사회의 전통에서 유래된 끈끈한 유대의식도 이들
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지난 97년 재미 한
인기업가협회(KASE)를 결성,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건
너온 국내 기업의 정착을 지원하는 등 인도계의 모임인 인더스(I
NDUS)와 함께 대표적인 아시아계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이들과 유럽의 교포 벤처기업, 국내 벤처기업들이 한민족 글로벌
벤처 네트워크(INKE)를 창설, 범세계적인 협력망을 구축하기도
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백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한다는 미국에서 세계
적인 기업가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국내 벤처기업들의 기술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시장을 고려한
기술개발과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에의 적응 등을 주문했다.
마이클 양 회장은 하루에도 수백건의 사업계획서가 한국에서 날
아오지만 대부분 이미 개발됐거나 시장성이 없는 기술들이라면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의 수요를 고려한 기술개발이 이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일닷컴의 제이 조 부사장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조차 비
공식적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적 기업문화에 젖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세계의 표준이 되고 있는
미국식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세계 IT산업을 실질적으로 이끌
고 있는 만큼 가능한 한 많은 인력의 실리콘밸리 진출이 필요하
다는 지적도 나왔다. 베트남전 종전 후 미국으로 건너온 베트남
계 이민자의 2세들이 대거 IT산업으로 진출하면서 한국계가 인도
중국에 이은 3위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이민해 스리컴 등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
어로 일해온 이영섭(33)씨는 인도와 중국베트남계 모두 수적으로
든 영어실력으로든 한국계를 능가하고 있다면서 한국내 벤처기업
및 인력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오남석 기자> (2000/12/18)